FALL OF BABYLON
바빌론 입성
기원전 539년
키루스 2세가 바빌론에 들어가 메소포타미아를 아케메네스 제국에 넣은 해입니다. 제국이 ‘페르시아의 산지’를 넘어 옛 문명의 수도를 품게 되는 사건입니다.
- 왜
-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의 통치가 신관층과 어긋났다는 것이 키루스 쪽 문서의 설명입니다. 페르시아는 이미 메디아와 리디아를 꺾은 뒤였습니다.
- 누구
- 키루스의 페르시아 대 나보니두스의 바빌론. 그리스 기록은 장군 고브리아스의 역할도 적습니다. 성서 전통은 벨사살을 그 밤의 인물로 기억합니다.
- 결과
- 바빌론은 파괴되지 않고 제국의 중요한 도시로 남습니다. 키루스 원통은 신상 반환과 신전 복구를 선언합니다. 유다 귀환은 에즈라가 따로 전합니다.
- 1기원전 539년은 교과서에서 널리 쓰는 해입니다. 오피스 전투 뒤 바빌론이 열렸다고 바빌론 연대기가 전합니다.
- 2도시는 약탈의 폐허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 왕들은 이후에도 바빌론을 수도의 하나로 씁니다.
- 3‘벽 위의 글씨’와 하룻밤의 함락은 다니엘서의 문학적 장면입니다. 바빌론 연대기의 입성과 같은 글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키루스 원통이 말하는 신의 이름은 마르두크입니다. 페르시아 왕의 신이 처음부터 한 가지 이름으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글에서 이 차이를 다시 적습니다.
이 입성 이후 페르시아 왕의 칭호에는 바빌론 왕의 자리도 겹칩니다. 정복은 궁전을 부수는 일만이 아니라, 옛 도시의 언어로 왕이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영화는 드뭅니다.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영화 목록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바빌론 연대기·나보니두스 연대기. 오피스와 바빌론 입성의 동시대에 가까운 기록
- 키루스 원통·입성을 마르두크의 선택으로 적은 왕실 문서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