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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야기Persi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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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S

전쟁

페르시아의 영토는 연설보다 전쟁에서 늘고 줄었습니다. 각 카드는 왜 싸웠는지, 누구와 싸웠는지, 끝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만 먼저 보여 줍니다. 그리스·로마·이집트가 본 같은 전쟁은 자매 사이트로 이어 둡니다.

FALL OF BABYLON

바빌론 입성

기원전 539년

키루스 2세가 바빌론에 들어가 메소포타미아를 아케메네스 제국에 넣은 해입니다. 제국이 ‘페르시아의 산지’를 넘어 옛 문명의 수도를 품게 되는 사건입니다.

왜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의 통치가 신관층과 어긋났다는 것이 키루스 쪽 문서의 설명입니다. 페르시아는 이미 메디아와 리디아를 꺾은 뒤였습니다.
누구
키루스의 페르시아 대 나보니두스의 바빌론. 그리스 기록은 장군 고브리아스의 역할도 적습니다. 성서 전통은 벨사살을 그 밤의 인물로 기억합니다.
결과
바빌론은 파괴되지 않고 제국의 중요한 도시로 남습니다. 키루스 원통은 신상 반환과 신전 복구를 선언합니다. 유다 귀환은 에즈라가 따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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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NIAN REVOLT AND MARATHON

이오니아 반란과 마라톤

기원전 499–490년

에게해 동쪽의 그리스 도시들이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고, 이어서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 앞 마라톤에서 지는 전쟁입니다. 현대 마라톤 경기의 전설과 이 전투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왜
밀레토스 등 이오니아 도시가 페르시아가 세운 참주에 반발했고,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잠시 군을 보냈습니다. 사르디스가 불탑니다. 다레이오스에게는 보복의 구실이 됩니다.
누구
이오니아 도시와 일부 그리스 지원군 대 페르시아 총독. 마라톤에서는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가 이끈 페르시아 원정군 대 아테네와 플라타이아. 다레이오스 1세는 전장에 없었습니다.
결과
기원전 494년 무렵 라데 해전 뒤 밀레토스가 함락됩니다. 490년 마라톤에서 페르시아 군이 물러납니다. 제국은 유지되고, 더 큰 원정은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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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RXES' INVASION OF GREECE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

기원전 480–479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육군과 함대를 직접 이끌고 그리스 본토로 들어간 전쟁입니다.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플라타이아. 영화가 가장 크게 키운 사건이고, 제국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합니다.

왜
마라톤의 패배와 이오니아 반란의 기억이 남았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선왕 다레이오스의 복수를 이은 전쟁으로 적습니다. 트라키아와 북그리스의 복속도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
크세르크세스의 육군·함대 대 그리스 도시들의 임시 동맹. 육지의 이름으로는 레오니다스, 바다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자주 나옵니다. 함대의 많은 배는 페니키아·이집트·이오니아 등 제국 안의 다른 지역 것이었습니다.
결과
480년 테르모필레에서 그리스 수비대가 전멸하지만,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가 집니다. 479년 플라타이아와 미칼레에서 육전이 그리스 쪽으로 기웁니다. 페르시아는 유럽 쪽 그리스를 속주로 만들지 못합니다. 소아시아와 제국의 나머지 땅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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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AND THE FALL OF THE ACHAEMENIDS

알렉산드로스와 아케메네스의 끝

기원전 334–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무너뜨린 원정입니다. 페르시아 왕조의 끝이자, 이란의 땅 위에 그리스어 왕들이 올라서는 다리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이 아닙니다.

왜
필리포스 2세가 만든 그리스-마케도니아 동맹의 명분은 페르시아 전쟁 때의 보복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왕위에 오르자 그 원정을 실행합니다. 제국 서쪽의 총독령은 이미 군사적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누구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그리스 군 대 다레이오스 3세의 제국군. 그라니코스, 이수스, 가우가멜라가 큰 회전입니다. 제국 안의 그리스 용병도 페르시아 쪽에 있었습니다.
결과
330년 다레이오스 3세가 베수스에게 죽고 아케메네스 왕위가 끊깁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에서 323년 죽습니다. 부하는 땅을 나누고, 이란과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은 셀레우코스 왕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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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OF CARRHAE

카르헤 전투

기원전 53년

로마의 삼두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치다 카르헤에서 전멸에 가깝게 패한 전투입니다. 파르티아 기병이 로마 군단을 어떻게 상대했는지가 이 전쟁의 핵심입니다.

왜
크라수스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 견줄 군사적 명예와 재물이 필요했습니다. 파르티아는 유프라테스 동쪽의 강대국이었고, 로마의 시리아 속주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누구
크라수스의 로마 군단 대 수레나 가문이 이끈 파르티아 군. 파르티아 쪽의 중심은 기마 궁수와 중장기병입니다. 왕은 오로데스 2세이고, 전장의 지휘는 수레나에게 있었습니다.
결과
크라수스가 죽고 군단기 일부가 파르티아에 넘어갑니다. 로마는 메소포타미아를 바로 속주로 만들지 못합니다. 빼앗긴 군단기는 기원전 20년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외교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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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ESSA AND VALERIAN

에데사와 발레리아누스

서기 260년

사산의 샤푸르 1세가 에데사에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은 전쟁입니다. 카르헤가 파르티아의 승리라면, 이번은 사산 왕실이 자기 비문에 새긴 승리입니다.

왜
로마와 사산은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의 경계를 두고 이미 여러 번 싸웠습니다. 샤푸르는 즉위 초부터 로마 쪽 원정을 비문에 기록합니다.
누구
샤푸르 1세의 사산 군 대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 직전 세대에는 고르디아누스 3세와 필리푸스 아라브스도 이 전선의 이름입니다.
결과
발레리아누스가 포로가 됩니다. 샤푸르의 비문과 나크시 루스탐 부조가 이 일을 왕실의 언어로 남깁니다. 로마 동부 여러 도시가 약탈당했다는 것도 그 비문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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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ANIAN–BYZANTINE WARS OF THE 6TH CENTURY

호스로 1세와 유스티니아누스의 전쟁

서기 527–562년

사산의 카바드 1세와 아들 호스로 1세가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와 메소포타미아·아르메니아·캅카스에서 맞붙은 전쟁입니다. 동로마 쪽 장군은 벨리사리우스였습니다.

왜
국경 요새(다라)와 캅카스의 라지카, 그리고 평화의 대가로 오가는 금을 두고 두 제국이 계속 부딪혔습니다.
누구
카바드 1세·호스로 1세의 사산 군 대 유스티니아누스의 동로마 군(벨리사리우스 등).
결과
532년 ‘영원한 평화’, 540년 호스로의 안티오키아 약탈, 562년 50년 평화 조약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쪽도 상대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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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 OF THE SASANIAN EMPIRE

사산 왕조의 끝

대략 서기 630–651년

긴 로마 전쟁으로 지친 사산 왕조가, 아라비아에서 올라온 이슬람 군대와의 싸움에서 무너진 과정입니다. 페르시아 사람이 사라진 해가 아니라, 왕조가 끝난 해에 가깝습니다.

왜
7세기 초 호스로 2세와 비잔티움의 헤라클리우스가 서로 깊이 쳐들어간 뒤, 양쪽 제국이 모두 소진됩니다. 사산 궁정은 짧은 기간에 왕이 여러 번 바뀝니다. 그 공백에 야즈데게르드 3세가 즉위합니다.
누구
야즈데게르드 3세의 사산 군과 지방 귀족 대 정통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군. 큰 회전의 이름으로 카디시야와 니하반드가 남습니다.
결과
카디시야(대략 636년)와 니하반드(대략 642년) 이후 크테시폰이 무너지고, 651년 무렵 마지막 왕이 메르브에서 죽습니다. 이란 고원의 행정 언어와 신앙 공동체는 왕조보다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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