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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야기Persi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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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RXES' INVASION OF GREECE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

기원전 480–479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육군과 함대를 직접 이끌고 그리스 본토로 들어간 전쟁입니다.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플라타이아. 영화가 가장 크게 키운 사건이고, 제국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합니다.

왜
마라톤의 패배와 이오니아 반란의 기억이 남았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선왕 다레이오스의 복수를 이은 전쟁으로 적습니다. 트라키아와 북그리스의 복속도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
크세르크세스의 육군·함대 대 그리스 도시들의 임시 동맹. 육지의 이름으로는 레오니다스, 바다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자주 나옵니다. 함대의 많은 배는 페니키아·이집트·이오니아 등 제국 안의 다른 지역 것이었습니다.
결과
480년 테르모필레에서 그리스 수비대가 전멸하지만,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가 집니다. 479년 플라타이아와 미칼레에서 육전이 그리스 쪽으로 기웁니다. 페르시아는 유럽 쪽 그리스를 속주로 만들지 못합니다. 소아시아와 제국의 나머지 땅은 그대로입니다.
  1. 1테르모필레는 좁은 길목의 지연전입니다. 스파르타 병사만 싸운 것이 아니고, 테스피아이 등 다른 도시도 남았습니다. ‘300 대 백만’은 영화의 비율입니다.
  2. 2아테네 사람들은 도시를 비웠고, 아크로폴리스는 불탑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좁은 해협에서 벌어집니다.
  3. 3크세르크세스는 해전 뒤 아시아로 돌아가고, 마르도니우스가 남아 이듬해 플라타이아에서 죽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헤로도토스의 병력 수는 후대 연구가 병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큰 군대였다는 점과, 그 숫자가 인구 조사였다는 점을 구분하세요.

바다를 채찍질했다는 일화, 왕좌에 앉아 전투를 구경했다는 장면은 그리스 서술의 성격이 강합니다. 배다리와 운하(아토스 반도)처럼 공사로 남는 준비는 여러 기록이 같이 말합니다.

이 전쟁 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만들고, 페르시아는 이집트와 키프로스에서 계속 싸웁니다. 그리스 고전기를 연 전쟁이지, 페르세폴리스를 닫은 전쟁이 아닙니다.

관련 영화

아래 작품은 페르시아를 무대로 한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300」300

2006 · 영화

테르모필레에서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병사가 페르시아 대군을 막는 이야기입니다. 프랭크 밀러의 만화를 잭 스나이더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전투의 이름과 해는 역사와 겹칩니다.

페르시아 군이 괴물이나 코뿔소처럼 나오는 장면은 기록에 없습니다. 에피알테스라는 인물의 모습과 배신 줄거리도 만화의 창작입니다. 크세르크세스의 외모와 궁정도 초상화가 아닙니다. 이 전투 뒤에도 아케메네스 제국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는 이 영화 밖에 있습니다.

「300: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2014 · 영화

같은 세계관의 후속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시온과 살라미스 해전 쪽으로 장면을 옮깁니다. 바다 전투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절반이라는 점은 기억할 만합니다.

아르테미시아는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카리아의 여왕으로, 크세르크세스 쪽에 배를 낸 실존 인물입니다. 영화의 복수와 연애, 전투 안무는 극본입니다.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선의 상당수는 페니키아·이집트·이오니아 등 여러 지역의 배였습니다. 한 여왕의 사선으로 줄이면 그 구조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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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로 삼은 기록

  • 헤로도토스 『역사』·7–9권.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플라타이아
  •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살라미스 직후의 아테네 비극. 역사서와 극은 다릅니다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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