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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이야기Persia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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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AND THE FALL OF THE ACHAEMENIDS

알렉산드로스와 아케메네스의 끝

기원전 334–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아케메네스 제국을 무너뜨린 원정입니다. 페르시아 왕조의 끝이자, 이란의 땅 위에 그리스어 왕들이 올라서는 다리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이 아닙니다.

왜
필리포스 2세가 만든 그리스-마케도니아 동맹의 명분은 페르시아 전쟁 때의 보복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왕위에 오르자 그 원정을 실행합니다. 제국 서쪽의 총독령은 이미 군사적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누구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그리스 군 대 다레이오스 3세의 제국군. 그라니코스, 이수스, 가우가멜라가 큰 회전입니다. 제국 안의 그리스 용병도 페르시아 쪽에 있었습니다.
결과
330년 다레이오스 3세가 베수스에게 죽고 아케메네스 왕위가 끊깁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에서 323년 죽습니다. 부하는 땅을 나누고, 이란과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은 셀레우코스 왕조로 갑니다.
  1. 1334년 그라니코스, 333년 이수스, 331년 가우가멜라. 이수스와 가우가멜라에는 다레이오스 3세가 있었습니다.
  2. 2수사와 페르세폴리스의 보물가 차지되고, 페르세폴리스 궁전이 불탑니다. 보복인지 주연의 불인지는 고대 기록이 갈립니다.
  3. 3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궁정의 예법 일부를 받아들이고, 324년 수사에서 이란 귀족과 혼인합니다. 이 정책은 마케도니아 부하들과 마찰을 일으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그가 죽은 뒤 제국은 한 사람의 나라로 남지 않습니다. 셀레우코스는 바빌론에서 출발해 시리아에서 이란까지를 차지하고, 티그리스강에 셀레우키아를 세웁니다. 그리스어가 도시의 공용어로 얹히는 시기입니다.

파르티아는 이 셀레우코스 질서가 느슨해진 북동쪽에서 다시 이란 왕국으로 자랍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역사에서 왕조의 목록에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는 다리로 적는 편이 맞습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도시 쪽의 전기는 그리스이야기에 있습니다. 이집트 입성과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이야기의 전쟁 글이 이어 받습니다.

관련 영화

아래 작품은 페르시아를 무대로 한 극입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알렉산더」Alexander

2004 · 영화

올리버 스톤의 영화입니다. 가우가멜라에서 인도, 바빌론에서의 죽음까지 원정의 큰 지도를 한 편으로 보여 줍니다. 아케메네스 제국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감을 잡을 때 자주 거론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왕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왕입니다. 개인적 관계와 대사의 상당수는 창작이거나, 후대 그리스 전기가 전하는 소문을 사실처럼 이어 붙인 것입니다. 페르세폴리스의 화재가 계획이었는지 연회의 사고였는지는 고대 기록도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페르시아 궁정의 의상과 의식은 고증 교과서가 아닙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1956 · 영화

로버트 로슨이 만들고 리처드 버턴이 알렉산드로스로 나온 스튜디오 시대의 영화입니다. 2004년 작품보다 앞서, 원정을 ‘위대한 정복’의 이야기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대사는 고대 기록을 그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부왕 필리포스 2세, 동방 원정, 바빌론의 죽음을 한 줄로 이으면서 해와 전투를 건너뜁니다. 다레이오스 3세와 페르시아 궁정은 배경에 가깝습니다. 역사 쪽 순서는 이 사이트의 전쟁 글을 보세요.

추천 영화 전체 보기 →

근거로 삼은 기록

  • 아리아노스 『알렉산드로스 원정기』·원정의 가장 신중한 그리스 쪽 정리.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기록에 기댐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성격과 일화. 화재와 궁정 장면이 많음
  • 디오도로스 『역사총서』 17권·페르세폴리스 화재의 또 다른 버전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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