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OF CARRHAE
카르헤 전투
기원전 53년
로마의 삼두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치다 카르헤에서 전멸에 가깝게 패한 전투입니다. 파르티아 기병이 로마 군단을 어떻게 상대했는지가 이 전쟁의 핵심입니다.
- 왜
- 크라수스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 견줄 군사적 명예와 재물이 필요했습니다. 파르티아는 유프라테스 동쪽의 강대국이었고, 로마의 시리아 속주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 누구
- 크라수스의 로마 군단 대 수레나 가문이 이끈 파르티아 군. 파르티아 쪽의 중심은 기마 궁수와 중장기병입니다. 왕은 오로데스 2세이고, 전장의 지휘는 수레나에게 있었습니다.
- 결과
- 크라수스가 죽고 군단기 일부가 파르티아에 넘어갑니다. 로마는 메소포타미아를 바로 속주로 만들지 못합니다. 빼앗긴 군단기는 기원전 20년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외교로 돌아옵니다.
- 1플루타르코스는 파르티아 병력이 로마보다 적었다고 적습니다. 고대의 비교 숫자는 과장되기 쉬워, 여기서 병력을 확정하지 않습니다.
- 2열린 평원에서 기마 궁수가 군단의 밀집을 흔들고, 중장기병이 무너진 대열을 치는 그림이 이 전투의 설명입니다.
- 3크라수스의 입에 녹인 금을 부었다는 이야기는 후대 일화입니다. 카시우스 디오가 전하는 설화이지, 전투 보고서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카르헤는 오늘의 하란 근처, 유프라테스 상류의 평원입니다. 로마가 동쪽으로 걸을 때 반복해서 만나는 지형이 여기서 처음 크게 각인됩니다.
이 패배 뒤에도 파르티아 왕국 내부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귀족이 센 나라는 밖에서는 로마를 막으면서, 안에서는 왕위 다툼이 잦았습니다. 사산 왕조는 그 구조를 불만으로 삼아 일어납니다.
이 전쟁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영화는 드뭅니다.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영화 목록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크라수스·카르헤의 가장 긴 전기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금덩이 일화를 포함한 후대 로마 기록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