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SSA AND VALERIAN
에데사와 발레리아누스
서기 260년
사산의 샤푸르 1세가 에데사에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은 전쟁입니다. 카르헤가 파르티아의 승리라면, 이번은 사산 왕실이 자기 비문에 새긴 승리입니다.
- 왜
- 로마와 사산은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의 경계를 두고 이미 여러 번 싸웠습니다. 샤푸르는 즉위 초부터 로마 쪽 원정을 비문에 기록합니다.
- 누구
- 샤푸르 1세의 사산 군 대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 직전 세대에는 고르디아누스 3세와 필리푸스 아라브스도 이 전선의 이름입니다.
- 결과
- 발레리아누스가 포로가 됩니다. 샤푸르의 비문과 나크시 루스탐 부조가 이 일을 왕실의 언어로 남깁니다. 로마 동부 여러 도시가 약탈당했다는 것도 그 비문의 내용입니다.
- 1260년이 널리 쓰는 해입니다.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페르시아 비문이 말합니다.
- 2고르디아누스 3세가 전사했는지, 로마 진영 안에서 죽었는지는 양쪽 기록이 다릅니다.
- 3발레리아누스를 발판으로 썼다는 류의 이야기는 후대 적의 글입니다. 부조가 보여 주는 것은 굴복의 선언이지, 그 설화의 검증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이 승리 뒤 사산은 시리아 안쪽까지 깊숙이 쳤다가 팔미라의 오데나투스에게 견제를 받습니다. 한 전투의 승리가 로마 제국의 멸망은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와 로마는 그 뒤로도 삼백 년 넘게 경계를 놓고 싸웁니다.
같은 재위에 마니가 활동합니다. 전쟁의 왕실과 종교의 왕실이 완전히 같은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이 전쟁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영화는 드뭅니다.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영화 목록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샤푸르 1세 비문·카바예 조로아스터. 로마 원정과 발레리아누스 포로
- 락탄티우스 등 후대 라틴 문헌·발레리아누스 모욕 설화. 페르시아 비문과 성격이 다름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