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AS
시대
연대는 교과서와 개설서에서 널리 쓰는 눈금입니다. 왕 한 사람의 즉위 해가 기록마다 한두 해 다를 때는 ‘대략’을 붙였습니다. 없는 연도를 메우지 않았습니다.
ACHAEMENID
아케메네스 제국
대략 기원전 550–330년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50년 무렵 메디아를 이기고, 리디아와 바빌론을 품으면서 페르시아는 여러 왕국 위의 나라가 됩니다. 그 이전의 엘람과 아시리아는 이 땅의 더 오래된 역사이지만, 이 사이트의 1부는 키루스에서 시작합니다.
수도가 하나가 아닙니다. 수사는 행정의 궁정, 바빌론과 엑바타나는 왕이 머무는 다른 계절의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파르스 지방의 의례와 보물의 단입니다. 사트라프(총독)가 먼 지역을 다스리고, 공납과 왕의 길이 그들을 왕과 연결합니다.
다레이오스 1세가 이 뼈대를 글로 남깁니다. 베히스툰 비문은 그의 왕위 이야기이고, 동시에 쐐기문자를 현대에 읽는 열쇠가 됩니다. 그리스와의 전쟁은 이 제국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벌어진 큰 사건이지, 제국 전체의 결말은 아닙니다.
크세르크세스의 원정이 실패한 뒤에도 왕은 150년 가까이 더 이어집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 이집트의 반란을 되돌린 일이 그 증거입니다. 왕조의 끝은 살라미스가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입니다.
BRIDGE
알렉산드로스와 셀레우코스의 다리
기원전 330년 이후, 파르티아 직전까지
기원전 330년 다레이오스 3세가 자기 편에게 죽으며 아케메네스 왕위가 끊깁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으로 그 땅을 차지합니다. 페르시아 왕 목록에 그를 넣지 않습니다. 넣으면 왕조의 성격이 흐려집니다.
그는 323년 바빌론에서 죽습니다. 부하는 제국을 나눕니다. 이란과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은 셀레우코스에게 가고, 티그리스강에 셀레우키아가 생깁니다. 그리스어와 그리스 도시 제도가 이란 왕실의 옛 땅 위에 한동안 얹힙니다.
이 시기를 여기서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도시 쪽은 그리스이야기가, 이집트 입성은 이집트이야기가 이미 적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이야기의 다음 칸은, 그 질서가 북동쪽에서 풀리며 나타나는 파르티아입니다.
PARTHIA
파르티아
대략 기원전 247–서기 224년
아르사케스가 셀레우코스 세력의 가장자리에서 나라를 세운 해를 기원전 247년 무렵으로 잡는 전통이 있습니다. 초기의 중심은 투르크메니스탄·이란 북동쪽에 가깝고, 미트라다테스 1세 때 메디아와 메소포타미아로 넓어집니다.
왕은 왕중왕을 칭하지만, 큰 가문이 군사와 땅을 나누어 가집니다. 아케메네스의 총독 장부와 같은 중앙 집권으로 보면 어긋납니다. 주화의 글자는 오랫동안 그리스어입니다.
로마가 이 나라를 얕보고 들어온 전투가 기원전 53년 카르헤입니다. 크라수스가 지고, 군단기를 잃습니다. 파르티아는 그 뒤로도 내부의 왕위 다툼이 잦다가, 224년 무렵 파르스 출신의 아르다시르에게 왕위를 내줍니다.
SASANIAN
사산
서기 224–651년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의 아르타바누스 4세를 이기고 사산 왕조를 엽니다. 왕실이 귀족 위의 왕중왕임을 다시 선언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제도도 이 시대에 더 분명해집니다. 아케메네스와 같은 종교 국가였다고 소급하면 안 됩니다. 그 차이는 신앙 글에 있습니다.
샤푸르 1세는 260년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습니다. 호스로 1세는 6세기에 세금과 군사를 고치고 비잔티움과 오래 싸웁니다. 크테시폰의 벽돌 아치는 이 왕조의 수도가 어떤 규모였는지를 아직 보여 줍니다.
7세기 초의 대전쟁으로 사산과 비잔티움이 함께 지칩니다. 카디시야와 니하반드 이후 야즈데게르드 3세의 왕조가 651년 무렵 끝납니다. 페르시아어와 사람들의 삶은 그 해에 멈추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의 범위는 왕조가 끝나는 자리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