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IUS I
역사
다레이오스 1세
Darius the Great · 아케메네스 왕 · 대략 기원전 522–486년
한국 독자에게는 다리우스라는 이름도 익숙합니다. 왕위를 차지한 뒤 총독과 공납, 왕의 길, 페르세폴리스로 제국의 뼈대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리스와의 첫 큰 충돌도 그의 재위입니다.
- 1베히스툰 비문은 그가 가짜 왕을 죽이고 여러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 왕의 목소리로 적혀 있습니다.
- 2사트라프(총독)와 공납, 수사와 사르디스를 잇는 왕의 길, 페르세폴리스의 시작이 이 재위와 연결됩니다.
- 3이오니아 반란을 진압한 뒤 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아테네·플라타이아 연합에 집니다. 왕은 그 전장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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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가 세는 스무 개의 세금 구역과, 왕실 비문의 속주 목록은 숫자가 같지 않습니다. ‘속주가 몇 개’를 하나만 외우면 어느 한쪽 목록을 버리는 일이 됩니다.
금화 다리크는 그의 이름과 묶여 기억됩니다. 은화 시글로스와 함께, 제국 안팎의 거래에 왕실의 무게가 실리는 도구였습니다. 곡식과 가축으로 내는 공납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흑해 북쪽 스키타이 원정은 헤로도토스가 길게 적지만, 이긴 전쟁인지 돌아온 전쟁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비문은 나일강과 홍해를 잇는 물길을 그가 열었다고 말합니다.
무덤은 나크시 루스탐의 바위 절벽입니다. 페르세폴리스 계단의 선물 행렬은 그의 궁정에서 시작된 의례의 얼굴을 보여 줍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베히스툰 비문·고대 페르시아어·엘람어·바빌론어. 왕위와 반란의 공식 이야기
- 헤로도토스 『역사』·3–6권. 제도와 스키타이, 이오니아, 마라톤
- 페르세폴리스 행정 문서·엘람어 배급 기록. 궁정의 살림을 보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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