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NIAN REVOLT AND MARATHON
이오니아 반란과 마라톤
기원전 499–490년
에게해 동쪽의 그리스 도시들이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고, 이어서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 앞 마라톤에서 지는 전쟁입니다. 현대 마라톤 경기의 전설과 이 전투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 왜
- 밀레토스 등 이오니아 도시가 페르시아가 세운 참주에 반발했고,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잠시 군을 보냈습니다. 사르디스가 불탑니다. 다레이오스에게는 보복의 구실이 됩니다.
- 누구
- 이오니아 도시와 일부 그리스 지원군 대 페르시아 총독. 마라톤에서는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가 이끈 페르시아 원정군 대 아테네와 플라타이아. 다레이오스 1세는 전장에 없었습니다.
- 결과
- 기원전 494년 무렵 라데 해전 뒤 밀레토스가 함락됩니다. 490년 마라톤에서 페르시아 군이 물러납니다. 제국은 유지되고, 더 큰 원정은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로 넘어갑니다.
- 1헤로도토스의 페이디피데스는 도움을 청하러 스파르타까지 달린 전령입니다.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려 ‘이겼다’고 외치고 죽었다는 장면은 더 후대의 이야기이고, 오늘날 마라톤 거리의 전설이 됩니다.
- 2스파르타군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축제 때문에 늦게 도착합니다. 전투의 주역은 아테네와 작은 도시 플라타이아입니다.
- 3이 승리가 페르시아 제국의 몰락은 아닙니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는 다시 제국 안에 남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
반란의 시작에는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와, 페르시아 쪽에 있던 그의 사촌 히스티아이오스의 계산이 겹칩니다. 자유 대 전제라는 한 문장보다 도시 정치의 이해관계가 먼저입니다.
마라톤의 전술은 그리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 궁수·경보병과 맞닿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병종의 차이는 군대 글에 모아 두었습니다. 병력 수는 헤로도토스도 전투마다 정확히 세지 못했고, 현대의 추정은 폭이 큽니다. 여기서 가짜 숫자를 채우지 않습니다.
이 전쟁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영화는 드뭅니다.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영화 목록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헤로도토스 『역사』·5–6권. 이오니아 반란과 마라톤의 기본 이야기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